절(사찰) 이야기

[스크랩] 전북 완주 불명산 화암사

하누니 2012. 7. 19. 09:24

 

조선초의 기록인 「화암사중창비문」에 따르면 신라시대인 7세기 경 원효(元曉)ㆍ의상(義湘) 두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짓고 수행했다고 한다. 중창비에 전하는 창건내력은 다음과 같다.

 

옛날 신라의 원효와 의상 두 조사께서 중국에 유학을 갔다가 도를 얻고 귀국하여 이곳에 주석하였다. (두 분은) 사찰을 짓고 머물렀는데, 절 법당의 주불인 수월자용(水月姿容) 보살은 의상스님이 도솔산에 수행하러 갔다가 친견했던 지용과 등신(等身)으로 조성한 원불(願佛)이었다. 절의 동쪽 고개에는 원효대(元曉臺)라는 법당이 있고 절의 남쪽 고개에는 의상암(義湘庵)이라는 암자가 있으니, 모두 두 분 조사께서 수행하시던 곳이다….

 

비문의 내용처럼 화암사는 당시 원효ㆍ의상 스님의 수행처로 알려져 있고, 사찰 동쪽과 남쪽 고개에 원효대와 의상암이라는 암자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의 연혁 역시 찾기 힘드나 고려시대에 문인 백문절(白文節, ?-1282)이 이곳에 들린 후 남긴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여, 고려 말에도 화암사에 법등이 이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초기인 1425(세종 7)에 와서 성달생(成達生, 1376-1444)이 절터만 남아 있던 이곳을 자신의 원찰로 삼기 위해 중창하였으며, 이때 해총(海聰) 스님 등이 불사를 주관하였다. 화암사중창비문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441년(세종 23)에 성달생이 써놓은 글로서, 그 후 130여 년이 지난 1572년(선조 5)에 비가 건립된 것이다.

 

1440년(세종 22)에 극락전을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일부 건물이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에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611년(광해군 3)에는 성징(性澄) 스님이 3번째 중창을 하였고, 1629년(인조 7)의 4창(創) 후 1666년(현종 7) 영혜(靈惠) 스님에 의한 5창이 있었으며, 1711년(숙종 37)에 다시 6창한 후 극락전상량문을 지었다. 1830년(순조 30)에 명부전 지장시왕탱, 1835년(헌종 1)에 산신각 산신탱을 조성하였으며, 1858년(철종 9)에 의상암의 신중탱을 조성하였는데 의상암이 없어지면서 극락전 내부로 옮겨 봉안하고 아울러 명부전의 각 시왕탱을 조성하였다. 1871년(고종 8)에 극락전 현왕탱, 1917년에 극락전의 칠성탱 및 괘불을 조성하는 등 19세기에서 20기초반에 이르기까지 사찰의 불화를 새롭게 단장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1981년ㆍ2002년에 각각 노후한 극락전을 해체 보수하였고, 1982년에 산신각의 산신탱을 조성하여 현재의 가람으로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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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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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얼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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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우화루

보물  제662호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조선 숙종 37년(1711)까지 여러번에 걸쳐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운 것으로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한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은 기둥을 세워서 바깥과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2층 마룻바닥을 땅과 거의 같게 놓아 건물 앞쪽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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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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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극락전

 

보물  제663호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며 소박하고 작은 규모를 보이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칸 뒤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그 위에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용을 조각하였다.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이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근세까지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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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현판과 지붕밑에 그려진 비천상이 너무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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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극락전 내

건물 내부에는 중앙 칸 뒤쪽에 소박한 불단을 놓고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였으며, 그 위에 닫집을 만들어 용을 조각하였다.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한 금동아미타삼존상과 19세기 후기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ㆍ16성중탱ㆍ신중탱ㆍ현왕탱ㆍ칠성탱, 그리고 조선시대의 동종과 괘불이 봉안되어 있다. 전체적인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백제계 공포의 흔적을 지닌 건물로서 건축사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아 보물 제663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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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동종

시도유형문화재 제40호

동종은 극락전 안에 있으며 전체 높이 140㎝, 몸체 높이 85㎝, 입 지름 70㎝이다.
종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도드라지게 장식한 문양이 있다. 어깨에는 간략화된 꽃무늬 띠를 둘렀다. 어깨 아래로는 4개의 유곽이 있고, 그 사이에 보살상을 새겼다. 유곽은 길이 25㎝, 폭 25㎝이며, 덩굴무늬로 장식된 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있다.
유곽 밑에는 금철대시주(金鐵大施主), 동철대시주(銅鐵大施主), 보시(布施), 공양(供養) 등의 문자판이 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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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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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중창비

시도유형문화재 제94호 

화암사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이 절의 중창(重創:원래의 절을 고쳐 새롭게 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화암사는 비문의 내용을 미루어 신라 문무왕 이전에 창건되었고, 이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쳤다 한다.
비는 넓다란 사각받침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비문이 많이 닳아 있어 읽기가 힘들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 태종 17년(1417)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했던 성달생이 절을 하나 짓고자 터를 찾아다니던 중, 화암사의 자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그의 뜻에 따라 세종 7년(1425)에 주지 해총이 절을 중창하였다. 이외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머물러 수도하였다는 기록도 보이며, 이들의 뜻에 따라 절을 잘 지키라는 당부의 내용도 실려있다.
세종 23년(1441)에 비문을 지어 선조 5년(1572)에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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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에서 바라다본 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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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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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우화루에 걸려있는 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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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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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적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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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6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내부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좌우 협시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ㆍ시왕상 등의 권속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들 불상은 모두 근래에 봉안한 것이다. 지장보살상 뒤에는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는 1830년(순조 30)에 성수(誠修)ㆍ준일(準日)ㆍ내원(乃原)ㆍ익찬(益贊) 등 15인의 화원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이다. 내용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도명존자ㆍ무독귀왕이 협시로 있는 간략한 구도이며, 화면 하단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170cm, 세로 17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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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명부전내 지장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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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산신각

17세기 초에 지은 산신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인 맞배지붕 건물로서, 내부에는 1982년에 조성한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산신각에는 1835년(헌종 1)에 조성된 산신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그 탱화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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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요사채

 

 

화암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천안까지 간 뒤, 천안-논산간 민자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논산까지 간 다음, 호남고속도로의 상행선 방향으로 올라와 논산 나들목으로 빠져나가는 게 거리나 시간상으로 모두 가장 빠른 길이다.

여기에서 602번 지방도로를 타고 논산의 가야곡면을 거쳐 양촌면으로 들어가 697번 지방도로를 이용해 운주면 방향으로 간다. 운주면에서 경천면 방향으로 난 17번 국도를 타고 7㎞ 정도 간 뒤 용복리의 용복주유소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표지판을 따라 4㎞쯤 가면 화암사 계곡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 자동차를 세우고 15분 가까이 걸어 올라가면 화암사에 이른다.

 

 

 

출처 : 충북불교를 사랑하는 모임
글쓴이 : 이암 전철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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