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 화려한 벚꽃만 찾다가 발 아래에서 우연히 발견한 봄까치꽃. 너무 작아 쉽게 지나칠 수 있다.
지난 3월2일 KBS 공사창립특집 TV문학관에서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김홍종 감독이 연출한 ‘강산무진(江山無盡)’이 방영됐다. 단막극은 경제성(?) 때문에 좀처럼 TV에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반가운 작품이다.

‘강산무진’에는 3명의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말기 간암판정을 받은 의류업체 수출담당 임원인 김창수(서인석), 절에서 커서 권투선수가 된 무명스님(황세정), 택시강도를 좇는 형사 수철(안재모) 등이다.

 

말기암 환자와 형사의 인연

혼란과 좌절 속 삶의 희노애락

절제된 영상과 편집…아름다워

드라마 속 무명스님과 주지 난각스님이 수행하는 절이 바로 서산 일락사이다. 드라마 속에선 외딴 섬에 있는 절로 보여지지만 사실은 가야산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6일 일락사를 찾았다.

해미IC를 빠져나오니 네비게이션이 8km 남았음을 알려준다. 짧은 거리지만 절로 향하는 길은 산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서산마애삼존불과 개암사 등 백제불교문화보고인 내포문화숲길도 이곳과 이어져 있다.

   
일락사 전경.
서울에도 벚꽃이 한창이라 더 아랫녘인 일락사에도 봄꽃이 활짝 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봄은 아직 산 속까지 들어오지 못한 듯 이제 막 대웅보전 아래 매화가 꽃을 피운 상태이다.

작지만 포근한 도량이라는 홈페이지 설명대로 연꽃모양의 가야산 가운데 쏘옥 담겨있는 모습이다. 대적광전과 명부전, 삼층석탑과 요사가 전부인 작은 도량이다. 하지만 마당에 큰 느티나무가 산사의 운치를 더해준다.

신라 문무왕 때 의현선사가 개창했다고 전해지는 일락사는 해미읍성의 축성 시기와 같은 조선 중기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KBS TV문학관 ‘강산무진’.
드라마 ‘강산무진’에서 절의 주지는 난각스님(안치욱)이다. 유독 말수가 적은 스님은 어린아이를 거두어 성년이 되도록 키웠다. 무명(황세정)이다.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지 못하는 무명스님은 부모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절 처마구석에 매단 샌드백을 두드리는 게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낚시꾼으로 변장한 한 수상한 인물이 숨어드는데, 주지 스님은 도망다니며 사는 그를 받아들인다. 무명스님에겐 절간을 찾아든 인물이 퍽 낯설다.

뭍으로 잠시 나간 무명스님은 그가 시국사범이란 걸 알고 경찰에 신고한다. 절을 찾아온 형사들은 낯선 사내와 주지 스님까지 함께 연행해 갔다. 주지 스님이 연행이 되자 무명스님은 절을 떠난다.

   
대적광전 모습.
그리고 권투선수가 된다. 처참하게 맞고 링에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난각스님이 나타나 그를 돌본다.

무명스님과 같이 ‘강산무진’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혼란과 좌절을 경험한다. 중년의 김창수는 간에서 암세포가 나와서 위장으로도 전이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강도를 좇던 수철은 반장의 자살소식을 듣고 형사직을 관둔다. 드라마는 절제된 영상과 편집으로 단편적인 정보만 보여준다. 관찰자같은 영상은 세 사람의 인생 중간을 훑는다.

힘들지만 그들 삶은 계속 이어져 간다.

일락사(日樂寺)에서 봄을 찾지 못했는데 주차장 한 켠 풀들이 우거진 곳을 살펴보니 작고 푸른 꽃이 피어 있다. 봄까치꽃이다. 너무 작아 잘 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한 파란색을 담고 부끄러운 듯 미소 짓고 있다.

삶이 계속 이어가듯이 봄은 어느새 아주 낮은 곳에서 피어났다.

우연치 않게 발견한 봄까치꽃, 오늘 하루도 즐겁다.

   
개심사와 서산마애삼존불로 이어지는 내포문화숲길.